삼척향교 현황

향교연혁

삼척향교는 삼척시 교동 566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삼척시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삼척(三陟)이라 불리워졌으며, 고려 성종 때 척주(陟洲)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태조 2년 (1393)에 태조의 선조인 목조(穆祖)의 외가(外家)고을이라 하여 부(腐)로 승격되었다가 태종 13년 (1413)에 도호부(都護府)로 다시 승격되었다. 그 후 고종 32년(1895)에 군(郡)이 되었고 1986년에 삼척시로 승격되었다.
삼척향교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7년(1398) 고촌음곡(古村音谷) 동쪽 기슭에 창건되었다고하며 태종 7년 (1407)에 부사(府使) 권전(權전)에 의해 옥서동(玉瑞洞) 월계곡(月桂谷), 지금의 당저리(塘底里)로 옮겼다가 세조 14년(1468)에 부사 권종손(權宗孫)에 의해 현 위치인 교동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건하면서 어떤 연유에서 인지 대성전을 먼저 짓지 않고 동서재를 먼저 지었다.
성종 원년(1470)에 대성전을 지었으며, 성종 3년(1472)에는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중종 31년(1536)에 부사 변성(邊成)이 뒷 담장을 쳤고 명종 15년(1560)에 부사 김광진(金光軫)이 뒷 담장을 개수하였다. 선조 9년(1576)에 부사 김효원(金孝元)이 자성고(자盛庫)를 짓고, 이어 선조 13년(1580)에 부사 황정식(黃廷式)이 남루, 즉 명륜당의 호창(戶窓)과 재주(齎廚)를 신축하였다. 선조 33년(1600)에 부사 김권(金權)과 신경희(申景禧) 에 의해 서재와 명륜당이 순차적으로 중수되었다.
광해군 3년(1611)에는김계건(金啓鍵)등이 동서무의 건립을 오윤겸(吳允謙)에게 건의하였고 같은 해에 부사 민인백(閔仁伯)이 외곽에 번와 보수를 하였다. 광해군 4년 (1612)에는 대성전을 확장 중수 하였다. 효종 7년(1656)에는 부사 이지온이 대성전 앞뜰을 수축(修築)하고 하마비와 망료석함을 제작하였다고 하며, 현종 6년(1665)에 부사 김진표(金震標)가 대성전 중수를 시작하고, 동서재를 헐어 아래로 옮긴 다음 동서무를 지었으며, 이듬해에 부사 정창수(丁昌壽)에 의해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숙종 8년(1682)에 당시 부사(府使) 유송제(柳松齊)가 향교의 중수를 이유로 교동에서 건지리(乾芝里)로 이건하였다가 유림들의 반발로 숙종 26년 (1700)에 부

사 심단(沈檀)에 의해 다시 현 위치로 옮겨오기 위해

터를 닦고 이듬해에 부사 박행의(朴行義)에 의해 이건되었다.

숙종 30년 (1704)에 제기고를 건립하였고, 숙종 36년(1710)에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같은 해에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대성전 현판을 썼으며 주자를 글씨를 모아 명륜당 현판을 만들었다. 영조 20년(1744)에 부사 최상정(崔尙鼎)이 성전(聖殿)과 동서무를 중수단청 하였으며, 1764년에 서까래와 기와를 교체하였다.

정조 5년 (1781)에 부사 이헌경(李獻慶)에 의해 대성전과 동서무를 중건하였다, 정조 12년 (1788)에 동재, 서재 그리고 식루(食樓)를 중수하였으며, 순조 8년(1808)에 부사 홍경두(洪景斗)에 의해 대성전과 동서무, 제기고를 중수하였다, 순조 16년(1816)에는 동서재와 명륜당을 중수하였으며, 순조 25년(1825) 봄에 부사 민사관(閔師寬)에 의해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헌종 4년(1838)부사 이규헌(李奎憲)에 의해 동무와 담장을 중수하였으며, 헌종 6년(1840)에 홍살문을 고쳐지었다. 헌종 7년(1841)에 부사 이인원(李寅元)에 의해 대성전과 서무를 중수하였다.

철종 3년 (1852)에는 부사 정재용(鄭在鎔)이 대성전과 동서재, 제기고를 보수했으며, 철종 9년(1858)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철종 11년(1860)에는 대성전과 동서무를 보수하였으며, 고종 1년(1864)과 5년(1868), 24년(1887)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고종 11년(1874)에 제기고를 보수하였으며, 고종 18년(1881)에 서재를 보수하였다, 고종 26년(1889)에는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제기고, 재실, 외문 등 전체 일과에 대한 중수를 실시하였으며, 1898년에는 동서재를 중수하였다, 1901년에는 대성전과 동서무를 중수하였고 이듬해애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05년 군수 정운석(鄭雲晳)에 의해 일곽 전체를 중수하였다. 1914년에 일곽을 중수하고, 군수 심의승(沈宜昇)이 삼척 공립보통학교를 명륜당 앞으로 이건하였으며, 1925년에 다시 문묘 일곽을 중수하였다. 1926년에는 숙청재를 중수하였고, 이해에 향교 소장 전적을 군도서관에 이관하였으며, 1930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34년에 이관되었던 서적을 다시 향교에 보관하였고, 그 과정에서 반 이상의 전적이 없어졌다. 1938년에 대성전, 동서무, 명륜당 일곽을 중수하고, 이듬해에 대성전과 동서무에 단청을 새로 했으며 1941년에 장경실을 건립하였다. 1944년에 서무를 중수하였으며, 성균관에서 모사해 온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심잠(心箴)을 모사해 명륜당에 걸었다. 1948년 내삼문과 제기고, 취사소(炊事所)를 중수하였고 1952년 대성전과 동서무, 명륜당을 중수 단청하였다. 이듬해에는 후원과 앞 단장을 증축하였으며, 1956년에 쓰러진 서쪽 협문을 다시 세웠다.

1959년에 동서무를 각각 8척(尺)씩 확장 중수하였으며, 대성전과 내삼문, 명륜당에 부연을 달았다. 1961년에 제기고를 새로이 고쳐 짓고 1963년에 명륜당을 단청하였으며, 1964년에는 수복실 4칸을 직청 밑으로 이건하였다 . 1968년에 명륜당과 동서재 절반이 화재로 전소되었고 1970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976년에 묘정비를 건립하였고, 대성전을 보수하였으며, 1979년에 대성전과 직청, 외문을 보수하고, 홍살문과 연혁판 등을 새로이 지었다. 이어 1985년에 시도휴형뮨화제 제 102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에 동재와 서재, 직청을 보수하였으며, 1990년에서 1992년 사이에 명륜당, 대성전, 내삼문 등이 중수되었다.

현재 대성전, 명륜당 및 협문을 모두 합하여 15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향교 내에는 <명륜당중건기(明倫堂重建記)>, <삼척향학중수기(三陟鄕學重修記)>, <아국십팔현성묘승봉기(我國十八賢聖廟陞奉記)> 등 많은 양의 기문 및 편액이 남아 있어 향교 역사의 고증에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다.